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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는 1970년 광주광역시 북구 중흥동 기찻길 옆 블록집에서 딸을 얻었다. 그는 아들과 딸의 이름을 모두 ‘크게’ 지었다. 한 작가는 “큰아들은 ‘한국인’이고, 딸은 한국에서 가장 큰 강인 ‘한강’으로 지었다. 장남은 이름 때문에 고생하다가 개명했다. 어렸을 때 강이를 한강, 낙동강, 대동강이라고 놀렸다더라”고 덧붙였다. 한 작가가 한번은 제 방에 누워있던 딸에게 “너 거기서 뭐 하고 있니?”라고 물었더니, 딸은 “공상이요! 왜요, 공상하면 안 돼요?”라고 반문했다.
“강이도 진즉 (문학으로) 홀로서기를 한 사람인데, 계속해서 한승원의 딸이라고 하면 어색하지.”
11일 오전 전라남도 장흥군 안양면 사촌리 율산마을 ‘해산토굴’에서 만난 한승원(85) 작가는 “아버지보다 더 잘되는 게 효도”라고 말했다. 해산토굴은 한 작가가 귀촌해 살면서 글을 쓰는 집필실이다. 2016년 딸이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했을 때 그는 한 인터뷰에서 “전에는 ‘한승원의 딸’ 한강이었는데, 이제는 내가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이 되어 버렸어요”라고 말했다. 이들 부녀는 ‘이상문학상’과 ‘김동리문학상’를 2대가 수상했다. 아버지는 전날 딸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전화를 걸어 “내 딸이 최고다”라고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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